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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집값, 렌트( 월세 ) 컨설팅 25년 경력 리얼터 & 프로퍼티매니져
컨설팅 25년 리얼터/프로퍼티매니져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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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의 추억

2009. 5. 4. 08:46 지난글
외국살면서 왠 IMF의 추억? 하시겠지만
밴쿠버 만큼 호되게 IMF겪은 지역도 없으리라 봅니다.
요즘 집값 올라 돈버신분들 많으시지만 그 춥고 배고프고 우울했던 시절
과감히 [벳팅]했던 분들이 더욱 많이 버신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밴쿠버는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약 8천 KM?) 북미대륙인 탓에 유달리
큰 나무를 옮겨다 심고 뿌리를 내려야하는 고통스런 이민 보다는 뿌리는 고국에
두고 가지만 뻗어나와 주로 "한국에서 갖다 먹는" 라이프스타일이
아주 상당히 많은 지역인 관계로 그놈의 IMF는 한마디로 [전쟁]상황 이었던
것입니다.

우선 전세주고 이민온 케이스, 전세값은 떨어지고 세입자는 깍아주던지 아니면
나가겠다고 으름장 놓고, 깍아주자니 가지고온 돈은 써버렸고..
팔자니 이건 정상으로 알고있던 시세의 반도 안준다고하고..
상가등을 월세주고 오신분들도 점포, 사업체가 불경기로 나가떨어지니
아무리 보증금이 있었다해도 손해보신 분들 많았고..다행히 [현찰]에 대한 이자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지만 [환율]도 공포의 수직상승선을 그리며
필자가 96년 이민올때 570원하던 환율이 당시 1300원을 넘었었습니다.
필자는 당시 이곳 한국계은행에 다니면서 대출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코리아의 K자만 떠도 현지은행에서 단돈 1불도 못꿔주겠다 하니 한국은행에
비장되어 있던 달러를 가져다 그날그날 북미 여러지점에서 조금씩 나누어
꼭 필요한 대출만 기표해야했던
( 그러자니 또 집사고 사업체 인수하실때 멀쩡했던계약이 얼마나많이 깨어졌는지..)
참 조금 과장해서 말씀드리자면 눈물없이는 볼 수 없었던 비참한 일들 말도
못하게 많았습니다. 가정경제 파탄으로 유학생들이 귀국을 위해 운이 좋은 학생들은
비행기표값  마지막 송금을 받으려고 또는 아예  계좌를 닫고 귀국하려고 은행문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길고 긴줄을 이루어 밴쿠버다운타운 한모퉁이를 몇겹
이나 감아돌았던 광경, 은행에 환율확인위해 전화하셨던 고객들의 한맺힌 절규!
" 너희 은행놈들이 대출을 잘못해서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어!"

한국계 건설회사가 개발분양 중이던 버나비 메트로타운 대형 쇼핑몰 프로젝트에
대출해주던 캐나다 은행이 하루아침에 대출 중단/회수에 들어가니 건설사는 또 대출해줄
다른 은행 을찾아 구천을 떠돌고.. 다운타운에 성업중이던 한국계 은행은 고국으로 철수,
필자가 다니던 은행도 잠깐은 버티었었지만 기어이 다운타운 브랜치를 잃었습니다. 

재미있는 일은 그 와중에 나라를 그 지경으로 만든 그 대통령께서 당시 밴쿠버에 에이팩
참석차 오신다고 또 그와중에 어디선지 공문이 내려와 여행원 선발하여 한복차려입고
리셉션장에 보내라.. (이거이거 문민정권으로 바뀌어도 하는 짓들은 별로..)

그래도 통쾌했던 일은 당시 인도네시아쪽 독재정권 문제로 밴쿠버지역 대학생들이
크게 들고일어나 바로그 에이펙 참석자들을 향해 다운타운 한복판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경찰이 데모대를 말발굽과 최류탄으로 강경대응하여 수십명이 다쳤던 사건
그래서 그 경찰의 강경진압 사건은 청문회를 거치면서 그후 몇년을 끌었으며 그 데모대의
주 타켓 이었던 인도네시아는 그후 한국 IMF에 버금가는 경제적타격과 함께 마침내
독재정권의 종말을 고했다는 점 입니다. 이상하게 들리실지 모르겠으나
저는 당시 나라를 그 지경으로 만든 바로 그 대통령께서도 생전처음 외국땅 시내 한복판에서
에서 상당히 강도높은 시위 탓에 외제 최류탄 냄새도 좀 맡아보시는등 고생도 좀하셨고
커다란 말(캐나다 말은 상당히 크답니다)들도 막 길길이 뛰고, 그래서겁도 조금 나셨을테지
생각하며 그나마 기분이 약간 나아졌던 것을 기억합니다.
최근에 들으니 당시 나라를 그지경으로 만든 그 대통령을 모셨던 경제전문가께서 분명히
사전에 알던 일이었고 보고도 했다고 하던데.."참 우찌된 일이었는지."

아뭏튼 뭐, IMF 얘기만 나오면 좀 혈압이 올라서.. 죄송합니다. 이민와서 국적도 포기한
주제에 감히.. 그런데 월드컵때, 또 탄핵정국 촛불시위때 보면 다운타운에 한인들 학생들 잘도
모이던데 왜 그땐 오히려 외국학생들만 열심히 뛰게하고 우린 조용했었는지..
하긴 뭐 갑자기 나라를 그 지경으로만들어 국민들의 신용까지 도매로 넘겨 불량판정
받게했으니 국민들도 정신 추스릴 틈도 없던 그야말로 패닉상황 이었던 탓 이었겠지요.

옆길로 한참 빠져나가던 얘기를 다시 제대로 끌어 오고자 합니다. 어쨌든 이젠 여기도
옛얘기들 하고 살고 있습니다. 한인타운은 날로 번창하고, 높은 환율/이자 끌어다 집을 사신
분들도 전매차액이 상당하니 이젠 손해는 없으시다는 말씀들도 많이들 하십니다.
갖고계신 현금이 많으셔서 당시 고국에 역송금해서 증권해서 돈벌다가 다시 오신분들도 계시고
무엇보다도 1에이커, 약 1200평하는 택지 IMF 당시 10만불대에 구입하셔서 현재 45-50만불에 
되팔고계시니 최소한 1년에 5만불씩은 버시고들 계십니다.

허지만 6백원하던 환율이 1300원을 휙 뛰어넘었던 그 암울했던 IMF 시절, 어떻게든
에이커땅을 사들이시고자 다시 이은행 저은행으로 한푼이라도 더 대출을 받기위해 동분서주하
셨던( 한푼이라도 한국에서 더 적게 가져오기 위해..)그 노고, 그 숱한 주위의 만류, 경고
그래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망설여지는 마음.. 어쨌든 그 고난의 순간순간을 잘 넘기신 분
들의 승리의 미소는 항상 달콤한 행복의 열매를 맺기위한 끓임없는 기원과 노력을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이 에이커 땅에 좀더 적극적인 투자를 하셨던분들중, 주변 도로망 등 [인프라]를 눈여겨

보셨다가 이를 분할(Subdivision)하셔서 하루 아침에 백만장자가 되시는 분들도 계신데
한국처럼 땅만 깔고앉아 개발업자들이 붙기만을 기다리시지 마시고, 시청으로 매일매일
출근하신다는 기분으로 열심히 움직이신다면, 1에이커 약 4만3천 Sq.ft. 대충 계산해도
5천Sq.ft.택지 최소한 5-6필지는 개발 가능합니다. 코큇틀람, 포트무디, 포트 코큇틀람권
조용한 5천 Sq.ft. 택지 시세 약 30만불, 5필지 가능하다면 총 수입 150만불. 개발비용은
약 20%선( 인프라 인접시)  기간 1.5-2년. 2년만에 [백만장자]가 되시는 비결입니다.
물론 [안목]과 [결단]그리고 [의지]는 백만장자의 필수조건 입니다.

2005. 5

전상훈( Shane Chun ) 캐나다 공인 중개사

realtorshane@gmail.com

http://myvancouver.tistory.com

 
 

 

 
posted by 컨설팅 25년 리얼터/프로퍼티매니져 경력